지난 11월, 홍콩 대포 지역의 왕복코트 아파트 단지에서 발생한 대규모 화재는 159명의 생명을 앗아가며, 50년 만의 최악의 화재 참사로 기록되었다. 국제 언론은 화염 확산의 원인으로 수백 년 역사를 가진 ‘대나무 비계’를 지목했으며, 여기에 구조물을 감싼 가연성 방화망과 스티로폼 단열재가 더해져 화염을 키우는 연료 공급처가 되었다.
그러나 이번 참사는 단순한 자재나 시공기술의 문제에서 비롯된 우발적인 사고가 아닌 ‘구조적 실패’의 결과이다. 홍콩대학교 정치행정학과 존 번스 명예교수는 이번 참사를 입찰담합, 부패, 경보기 미설치, 부실시공 등 정부의 감시·감독 부재에서 비롯된 시스템 재난으로 분석했다. 제임스타운 재단의 윌리 램 수석연구원 역시 참사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가 비계공사 재료보다는 무너진 감독 체계에 집중돼 있다고 설명했다. 현지 전문가들은 행정의 부재와 안전을 비용으로 치부하는 관행이 대규모 인재(人災)로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5년 7월까지 건설 현장에서 사망 1,072명, 부상 28,958명 등 총 30,030명이 상해를 입었다. 사망사고 유형을 보면, 추락사고가 53.9%(556건)로 가장 많고, 깔림(17.45%), 물체에 맞음(11.3%) 등이 뒤를 이어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고 패턴이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심지어 시공능력평가 상위 20대 건설사에서도 최근 5년간 148명이 사망했으며, 이 중 70% 이상이 기본적인 안전조치만으로도 충분히 예방 가능한 사고였다. 국제 비교에서도 한국의 건설업 사고 사망률은 OECD 평균의 두 배 수준으로, 영국의 9.75배, 독일의 5.57배, 일본의 3배에 달한다. 이는 단순히 일시적인 수치가 아니라, 하청 중심의 공사 구조와 소규모 현장 중심으로 사고가 반복되고, 대형 건설사마저 재해자 수가 증가하는 등 산업 전반에 걸친 고질적인 취약성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2022년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에게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부과하며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시행 이후에도 사고의 유형과 빈도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는 단순한 형사적 처벌 강화만으로는 안전을 확보할 수 없으며, 예방 중심의 안전관리 시스템 재설계와 현장 중심의 실행력 강화 없이는 변화가 어려울 것이라는 현실을 드러낸 것이다.
한편, 최근 건설 현장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AI와 자동화 기술은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드론 측량, AI 기반 구조물 진단, 자동화 중장비 운용 등은 반복적이고 위험한 작업을 줄이며, 효율성과 정밀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예기치 못한 오작동(자동화 시스템의 오류, 센서의 판단 착오, 사이버 공격에 따른 제어 마비 등)은 기존의 물리적 위험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업자와 현장을 위협할 수 있다. 또한, 과도한 기술 의존은 작업자의 직관과 경험이 배제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와 같은 복합적인 위험 구조 속에서 미국 산업안전보건청(OSHA)의 「건설업 안전보건 프로그램(Recommended Practices for Safety&Health Program in Construction)」은 ‘예방 중심의 안전 시스템 구축’을 위한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OSHA가 제안하는 방향은 다음과 같다.
현재 한국의 건설 현장은 근로자 참여의 부재와 겸직 중심의 안전관리 구조로 인해 사고 예방 기능이 약화되고 있다. 현재 안전관리자는 법적 상주 기준을 지키지 못하거나, 여러 현장을 동시에 담당하며 현장점검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로 인해 위험성 평가와 안전점검은 형식적인 순찰로 전락하고 있으며, 위험요인을 발견하더라도 작업중지나 공정 조정을 요구할 실질적 권한이 없어 무력화되기 쉽다.
상위 조직의 작업 일정과 원가 압박이 강하게 작용하면서, 안전관리자의 조치 요청은 공정 지연의 원인으로 간주되고 묵살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근로자는 안전관리자를 ‘단속자’로 인식하고, 위험을 신고해 불이익을 받을까 우려하며 침묵하곤 한다. 근로자의 위험보고와 참여는 단순 권리를 넘어,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 이행을 입증하는 핵심 근거가 된다. 따라서, 근로자가 관리자의 보복 우려 없이 위험요소를 신고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호장치 마련이 실질적 안전문화를 확보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라 볼 수 있다.
국내 건설산업은 원·하도급 구조가 고착화되어 있으며, 도급·용역·위탁 과정에서 안전보건 확보 의무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특히, 원도급자가 실질적인 위험 통제권을 행사하면서도 법적 책임은 하도급에 전가하는 구조적 모순이 반복되고 있다.
많은 원도급자는 “시공은 하도급자의 독립적 책임”이라는 조항을 통해 현장 관리 책임에서 빠져나가려 하지만, 공정관리·작업순서·장비 배치 등 주요 의사결정은 원도급의 통제 아래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OSHA는 이러한 책임 회피를 방지하고 원도급자(General Contractor)의 명확한 역할을 규정하고 있다. 즉, 원도급자는 모든 근로자에게 동일한 수준의 안전보건 보호를 제공해야 하며, 작업 전 위험요소를 식별하고 이를 사전에 조율하는 총괄자의 역할을 명확히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OSHA는 「29 Code of Federal Regulation(29 CFR §1903)」을 통해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 규정을 위반할 경우의 법적 제재 기준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사업주’라는 개념은 「29 United States Code(29 U.S.C. §652)」에서 광범위하게 정의되어, 원도급자가 현장 근로자를 직접 고용하거나, 하청 근로자의 작업환경을 통제 또는 공정·일정·장비·안전관리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에도 OSHA의 제재 대상이 된다. 이 규정은 OSHA 소속 전문 감독관이 정기 점검, 사망사고 조사, 근로자 신고, 집중 점검 프로그램 등을 통해 현장 실태를 수시로 나가고, 사업주의 책임 이행 여부를 평가하는 체계 아래 엄격히 운영되고 있다.
기술이 빠르게 진화하는 만큼, 제도 마련과 기술의 현장 적용 속도 간의 간극도 커지고 있다. 기술이 현장에서 안전하게 활용되기 위해서는 우선, 사람이 기술 오작동을 감지하고 신속히 개입할 수 있는 ‘휴먼 인 더 루프(Human-in-the-loop)’ 구조 기반의 사람과 기계가 유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현장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이상 징후를 조기에 식별하고, 사고 가능성을 사전에 예측하여 대응할 수 있는 지능형 안전관리 시스템의 도입도 요구된다. 결국, 우리는 기술을 무조건적으로 믿을 수 있는 최상의 효율적인 수단이 아닌, 안전을 위한 선택적·전략적 도구로 바라봐야 한다.
끝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은 우리 사회에 ‘안전’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다시 환기시켰지만, 현재와 같이 처벌 중심의 대응만으로는 근본적인 개선에 한계가 있다. 실효성 있는 안전 확보를 위해서는 근로자의 저조한 참여·기술 활용으로 인한 새로운 위험 가능성 등에 사전 대응할 수 있도록, 예방 중심의 통합적 안전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처벌’에서 ‘예방’으로, ‘통제’에서 ‘신뢰와 자율’로, 안전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