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기간 중 최고경영자 서밋에 참석한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는 우리나라에 깜짝 선물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우리나라 정부, 삼성전자, 현대차 그룹, SK 그룹, 네이버 등에 총 26만장의 블랙웰(Blackwell)*급 첨단 GPU를 우선 공급하겠다는 의미로 구체적으로 공급시점이 언제부터 인지 명확하진 않지만, AI 기술 경쟁 시대 속에서 우리에게 우선 공급권을 부여하겠다는 그의 말은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선물처럼 느껴지는 것은 확실하다.
* 엔비디아의 가장 최신 주류인 ‘차세대 AI 전용 GPU 마이크로아키텍처’
GPU는 수만 개의 숫자 계산(행렬)을 한꺼번에 동시에 처리하는 ‘병렬 방식’을 통해 AI를 학습하거나 추론하는 과정 중 필요한 거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계산하는 장치이다. 이전에는 게임의 그래픽을 처리하는 데 사용했으나, 이제는 생성형 AI, 자율주행차, 스마트 공장 등의 개발 및 운영에 가장 ‘핵심’이 되는 부품으로 여겨진다. 젠슨 황은 최상위 모델인 블랙웰급의 공급을 언급했지만, 향후 일정에 따라 루빈(Rubin)이나 파인만(Feynman) 같은 보다 고성능의 칩이 출시되면 해당 모델로 공급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GPU가 AI 시대 속 가장 중요한 핵심을 담당하고 있는 부품인 만큼, 현재 전 세계는 GPU 확보에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향후 우리가 공급받게 될 GPU 26만장은 지금까지 부족했던 우리나라의 AI 데이터센터(‘AIDC’) 인프라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초석이 되어 줄 것이다. 전 세계의 상황과 비교해 보면, 단일 최대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는 일론 머스크의 ‘x.AI’가 멤피스에 설립한 ‘콜로서스 2’로, 무려 20만장 규모의 데이터센터이다. 우리가 공급받게 될 26만장은 정부 인프라로 5만장, 삼성/현대/SK가 각각 5만장, 네이버가 6만장으로 나뉘어질 계획이다.
국가 수준으로 보면 영국은 오픈AI, 엔비디아, 엔스케일(Nscale)과 협력 구성한 대규모 AI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인 ‘스타게이트 UK’를 통해 2026년 1분기까지 최대 8,000개의 GPU, 향후 31,000개까지 확대 구입할 계획이며, 오픈AI의 유럽 최초 AI 데이터센터 구축 프로젝트인 ‘스타게이트 노르웨이’는 최대 10만장의 GPU 확보를 목표하고 있다. 유럽의 기가팩토리 역시 10만장을, 아랍에미리트(UAE)는 최대 50만장을 구입할 계획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삼성SDS가 구미에 자체적인 AI 데이터센터(AIDC)를 구축했고, 포항에는 오픈AI와 삼성물산, 삼성전자가 협력 설립하는 AIDC가 있으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경우 해남에 ‘국가 AI 컴퓨팅 센터’를 설립할 예정이다. ‘국가 AI 컴퓨팅 센터’는 2028년까지 1.5만장, 2030년까지 5만장 이상의 GPU를 확보할 예정이며, 이미 13,000장을 보유한 상황이다. SK 그룹은 아마존과 함께 울산에 6만장 규모이자 100메가와트급 AIDC를 구축할 예정이다.
이번 GPU 26만장의 도입에 대해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비서관, 하정우 수석은 전 세계 3위급 규모라고 말했다. 아직까지는 이 정도 이상의 규모를 갖춘 나라가 미국과 중국, 두 나라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2-3년 안에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가 경쟁적으로 AIDC를 구축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단순히 26만장이라는 숫자에 만족하고 머물러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젠슨 황은 우리나라를 “소프트웨어 역량과 제조 기반을 함께 가진 나라”이고 “AI 시대를 앞당길 수 있는 조건을 모두 갖춘 나라”라며 언급한 바 있다. 즉, 우리나라 정부와 삼성 등 대표 기업들이 탄탄한 제조 역량을 바탕으로 반도체, 자동차, 인터넷 서비스 등을 통해 미래 AI 시대를 리딩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AI 기술을 통해 우리의 제조 역량을 한 단계 높여 나가야 하는 시대적 과업이 있고, 엔비디아로서는 자사 기술을 실제 현장에 도입해 성과를 입증하고자 하는 목적이 서로 부합하여 이번 GPU 26만장 공급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잠시 우리 정부와 기업이 이번 GPU 공급을 통해 추진하고자 하는 계획을 살펴보자면, 우선 정부는 국내 기업의 AI 개발 지원,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및 국가 AI 컴퓨팅 센터 구축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차세대 반도체 AI 팩토리, 디지털 트윈** 개발, 차세대 가정용 로봇 개발 등에 활용할 계획이며, SK 그룹은 디지털 트윈과 AI 에이전트 개발 등을 목표하고 있고 있다.
한편 엔비디아는 지난 ICT융합 전시회(CES)에서 젠슨 황이 강조했던 피지컬 AI*의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옴니버스’라는 자사 디지털 트윈 플랫폼과 실제 세상에 대한 추론 및 시뮬레이션이 가능한 ‘코스모스’라는 월드 모델을 전 세계 공장에 공급하고자 하는 목표를 갖고 있다. 코스모스 월드 모델은 H100 GPU 1만장 규모를 활용해 2천만 시간의 영상을 학습하여 물리적 세계의 법칙, 공간, 시간 등을 이해하고 시뮬레이션하는 인공지능 모델이다. 코스모스 월드 모델과 같이 세상이 움직이는 원칙과 현실 세계에서의 공간, 시간 등을 이해할 수 있는 ‘월드 파운데이션 모델’은 앞으로 AI 모델이 발전되고 추구해 나가야 하는 방향이지만, 아직까지는 기본 연구와 개발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앞서 언급했던 삼성, SK 등 국내 기업들이 디지털 트윈 및 AI 팩토리 등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엔비디아의 피지컬 AI 기술을 적극 활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며,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삼성과 같은 핵심 파트너를 통해 자사 AI 기술을 반도체, 자동차 등의 현실 산업에서 활용해볼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하는 것이 절실하기 때문에, 향후 우리나라 기업들과 엔비디아가 협력해 어떤 성과를 이뤄 나갈지 주목되는 바이다.
이번 첨단 GPU 공급을 발단으로, 우리나라에게 엔비디아는 단순 GPU 공급업체가 아니라 핵심 소프트웨어 스택을 제공하는 파트너로 자리잡아 갈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엔비디아와의 전략적 협력은 ‘기술 종속’을 유발할 수 있기에 우리가 경계해야하는 점도 분명히 있다. 뿐만 아니라, 이번 GPU 확보로 우리나라가 추진하고자 하는 AI 데이터센터의 구축 등은 대규모 전력 공급망을 필요로 하며, 설립 부지의 추가적인 확보 등 부수적인 고려사항을 동반하기에 우리는 이에 대한 대비를 단단히 마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