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보다 스마트폰을 먼저 보며 ‘모바일 네이티브’로 자라난 Z세대. 특정 환경을 후천적으로 익힌 것이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모국어처럼’ 자연스럽게 체득했다는 의미를 가진 ‘네이티브(Native)’라는 개념은, 단순히 어떠한 기술에 능숙한 것뿐 아니라 성장 과정 전체가 그 환경 안에서 형성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태블릿, 유튜브, 온라인 게임 등과 함께 자라면서 ‘혼자 좀 놀아본’ 그들. 팬데믹으로 인해 메타버스와 같은 온라인 공간에서 수업이나 동아리 활동까지 겪은 Z세대는, 물리적으로 혼자 있으면서도 타인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온라인상에서 적극적으로 소통하지만 동시에 혼자 있는 시간에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그들은, 고독 역시 자연스러운 일상의 한 부분으로 여기는 ‘고독 네이티브’인 셈이다. 관계를 피하고 혼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혼자 있는 상황을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고 기본값으로 학습한 세대라는 뜻이다.
“어떤 연예인은 메신저 친구가 몇 천명이 넘는다던데?” 방대한 친구 목록을 보고 ‘와, 핵인싸네!’하고 반응했다면 아마도 당신은 밀레니얼 세대. Z세대는 오히려 절레절레 고개를 저을지도 모른다. 쉴 새 없이 울려 대는 전화벨이나 메시지, 알림을 인기의 척도가 아니라, 고독을 침해하는 관계 소음이자 시간 비용으로 받아들인다.
SNS 앱 아이콘 위에 뜬 빨간 배지(badge)를 불편하게 느끼고, 지우기 위해 반복적으로 앱을 열어 확인하기도 하는 현상인, ‘배지 강박(Badge Anxiety)’은 관계를 중요시하는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영향을 미치지만, Z세대는 알림 하나하나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새로운 방식으로 생존을 도모한다. 어릴 때부터 끊임없는 접속을 경험하면서 관계 비용을 누구보다 정확히 계산하고 조절하는 감각을 체득한 그들은 SNS 계정을 비공개로 설정하거나, 친구 숫자를 의도적으로 축소하기도 하고, 다중 계정을 운영하며 분야별로 원하는 네트워크를 맺고 관계 비용을 지속적으로 최적화하고 있다.
빨간 알림 배지를 보면 불편함
인맥 = 능력 (다다익선)
알림은 소음이자 시간 비용
계정 분리 & 비공개 설정
그런데 Z세대는 ‘읽씹’에도 아무렇지 않은 걸까? Z세대는 즉각적인 답변을 기대하는 환경 자체를 ‘폭력’으로 인지하는 세대다. 메시지를 읽고도 답하지 않는 ‘읽씹’이 그들에게는 마냥 무례한 행동이 아니다. 자신이 의도하는 타이밍에 의사소통을 재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며, 스스로의 고독을 지켜 내기 위한 권리로서 인지한다.
사생활 보호에 대한 감수성도 강해졌다. 누군가 갑자기 친밀하게 다가오는 것보다, 서로 적정 거리를 지키는 태도를 더 세련된 예의로 받아들이는 흐름이 자리 잡은 것이다. Z세대는 온라인에서 자신의 취향, 작업물, 라이프스타일을 공개하는 데는 거리낌이 없지만, 정작 오프라인에서 실제 사생활을 묻는 질문에는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SNS 노출과 사적 영역을 동일 선상에 두지 않는다는 점이 이전 세대와의 가장 큰 차이다.
이들의 단호함은 거절이 아니라 구조적 선택이다. 친밀함을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과부하 없는 인간관계,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는 ‘저부담 관계’를 유지하려는 전략적 판단이다. 타인이 나를 호출할 수 있는 시간과 채널을 스스로 통제해야만 삶의 밀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연결의 양을 조절하는 능력은, ‘인맥=능력’으로 여기며 살아온 기성세대에게 결여된 능력일지도 모른다.
음주 없이 캠퍼스 라이프를 보낸 세대. 대학 시절의 핵심 경험이라 여겨지던 OT(Orientation), MT(Membership Training) 같은 키워드가 Z세대의 라이프에선 자취를 감춘 것이다. 소위 ‘한창 연애할 나이’를 그들은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자연스러운 만남’이 사라진 시대에서 Z세대는 과거처럼 캠퍼스 로맨스를 기대하지 않는다. 대신 알고리즘이 골라준 취향 기반의 만남, 디엠(Direct Message)으로 시작하는 대화 같은 관계의 속도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느슨한 연결을 택한다. 연애를 ‘삶의 중심 프로젝트’로 두던 이전 세대와 달리, 이들에게 연애는 여러 프로젝트 중 하나일 뿐이다. 자아 관리, 자기 계발, 커리어 설계가 동시에 돌아가는 삶에서, 감정 노동이 큰 관계는 애초에 후보군에서 제외된다. 연애의 결핍이 아니라, 감정 자원의 배분 방식이 달라진 것이다.
캠퍼스 로맨스, MT
취향 기반의 연결
연애 필수, 결혼 목표
연애와 결혼은 자기계발과 동등
그렇다고 사랑이나 친밀감을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타인과의 관계를 축소하려는 것이 아니라, 삶의 부담을 최소화하고 리스크를 관리하려는 의도가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감정을 포함한 에너지의 총량을 일정 수준 이상 소모시키지 않는 범위에서만 관계를 설계한다.
최근 몇 년 동안 리얼리티 연애 예능 프로그램이 흥행한 것에는 Z세대의 이러한 특성과 니즈가 한 몫했다는 분석이다. 개인주의와 편의주의 같은 가치관을 가진 Z세대에게 연애 예능 프로그램 시청은 현실에서 관계 리스크를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감정 소비 공간’으로서 기능한 것이다.
Z세대가 결혼과 출산에 대해 진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Z세대는 결혼, 출산을 다양한 라이프 옵션 중 하나로 간주할 뿐이다. 전통적인 가족 형태를 넘어서 비혼, 동거, 혼합형 가족 모델에 대한 수용도가 높아졌고, 결혼과 출산을 시점과 조건에 따라 유연하게 결정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가족 형태를 설계하고 준비하는 능력이 향상된 세대’라고 볼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에 대해서 ‘나의 삶을 확장한다’는 순기능보다 ‘삶의 자율성을 크게 줄이는’ 역기능을 먼저 우려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살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솔로가 편해서? 연애를 못해서? 자칫 피동적이고 관계에 대해 회피적으로 비춰질 수 있는 Z세대의 요즘 태도는, 오히려 삶에 대한 깊은 고민과 진중함을 기반으로 한 적극적이고 현실적인 의미의 자기 결정이 담긴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고독함이 자산이 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앞서 보았듯이 Z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은, ‘나에게 필요한 것’을 중심으로 편성된다는 특징을 가진다. 불필요한 만남이나 감정 노동을 최소화해 확보한 시간적, 금전적 에너지를 정신적 회복, 체력 증진을 위한 기회로 환산하기 위해 루틴을 세밀하게 쪼갠다. ‘아침 루틴’, ‘야간 루틴’, ‘하루 30분의 집중 타임’ 같은 요즘 흔히 접할 수 있는 이러한 트렌드는 이들에겐 ‘자기 보호 시스템’에 가까운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들이 고독의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이 ‘고독감 자체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끌리는 것이 아니라, 혼자 있을 때만 가능한 효율과 회복, 성장의 속도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 이점을 이용해 내 자산으로 만드는 것뿐이다. 고독을 활용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언제든 다시 연결될 수 있다’는 자기 신뢰, 사회적 신뢰가 기반이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단순히 혼자인 시간이 길어지는 것과, 소외에 대한 불안을 품은 채로 사회적 지원이나 안전망 없이 고립되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다. ‘선택적 고독’과 ‘타의적 고립’을 구분하고 돕는 사회적인 시선이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앞으로 정부와 공공의 역할은 ‘고독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고독해도 안전한 환경을 만드는 것’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