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
여행은 우리를 설레게 한다.
비행기, 호텔, 맛집 리스트 등 챙겨야 할 것도 많지만 여행은 일상으로부터 잠시 떠나 새롭게 마주하는 소중하고 달콤한 시간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카피처럼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행은 보상처럼 주어지는 휴식과 재충전의 기회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 몸에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신체부위가 있다. 바로 ‘발’이다. 발은 여행할 때 그 어떤 신체보다 많이 혹사당한다. 우리는 하루에 2~3만보씩 걷기 일쑤다. 많이 보고, 찍고, 즐기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여행을 하다보면 발의 피로나 통증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던 발이 왜 그런 걸까? 체중이 60kg인 사람이 하루에 1만보를 걸으면 하루 종일 한 쪽 발에 실리는 무게가 얼마나 될까?60kg x 10,000보/2발 = 300톤이다. 일반적인 중형 승용차 무게가 약 1.5톤 정도니까, 하루에 만 보를 걸으면 양쪽 발에 각각 자동차 200대의 무게가 실리는 것과 다름없다.
실제로 여행 후유증으로 진료실을 찾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특히 한 중년 여성분이 있었는데, 성지순례길을 돌면서 너무 기쁘고 행복한 나머지 아픈 것도 참고 계속 걸었다고 한다. 귀국 후 다리의 심한 통증으로 발을 딛을 수가 없어서 결국 휠체어를 타고 병원에 왔다. MRI 검사 결과 양쪽 발과 정강이뼈에 피로 골절과 함께 뼛속가지 멍이 드는 골수 부종 소견이 관찰되었다. 일반적인 골절은 한 번의 큰 외력에 의해 발생하지만, 피로가 과하게 누적되면 멀쩡한 뼈에도 금이 가거나 골절이 발생할 수 있다. 가랑비에 옷 젖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에 발 전문가가 생각하는 몇 가지 중요한 팁을 공유한다.
1. 신중한 신발 선택
흔히들 편한 운동화면 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운동화라고 다 같은 운동화가 아니다. 많이 걷지 않는 여행이라면 크게 상관없지만, 많이 걸어야 한다면 꼭 체크해야 할 게 있다. 바로 겉창의 단단함이다. 겉창이 얇거나 너무 쉽게 꺾이는 신발은 발을 보호하는 기능이 적기 때문에 피로가 누적되기 쉽고 심하면 족저근막염을 유발할 수도 있다. 등산화처럼 겉창이 두껍고 단단해서 잘 꺾이지 않아야 걸을 때 발을 더 보호해준다. 앞꿈치가 찌릿찌릿한 지간신경종 증상이 있다면 앞꿈치까지 잘 꺾이지 않는 신발이나 둥그런 바닥으로 구르기 동작을 편하게 해주는 신발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단, 겉창은 단단하지만 안창은 푹신하고 부드러운 게 좋다. 가지고 있는 신발이 충분히 푹신하지 않다면 푹신한 깔창을 추가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좋은데, 이때는 깔창 두께 때문에 신발이 너무 꽉 조이지 않도록 여유 있는 크기의 신발을 선택해야 한다.
발볼은 무조건 충분히 넓어야 한다. 신발 안에서 발가락을 어느 정도 꼼지락 거릴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발볼이 좁으면 발가락 살들이 겹쳐지면서 물집이 잡히기도 한다. 특히 살이 얇은 사람들은 밴드나 종이 반창고로 발가락을 한 번씩 감아서 물집을 예방하는 것도 좋다.
2. 반드시 해야 하는 발 스트레칭
신발 선택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스트레칭이다. 스트레칭은 하루를 시작하는 준비 운동이고, 중간 중간 수시로 피로를 풀어주는 비법이다. 격렬한 스포츠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준비운동이냐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걷는 건 힘든 운동이 아니지만, 많이 걷는 건 다르다.
발바닥의 족저근막이나 아킬레스건과 같은 힘줄조직은 가느다란 콜라겐섬유가 모여서 이루어지는데, 한발자국 딛고 뗄 때마다 잡아당겨지거나 늘어나는 힘을 받는다. 하루에 몇 만보씩 걷다보면 반복적으로 당겨지다가 결국 섬유 가닥의 미세한 파열이 발생한다. 조직의 미세한 손상과 염증으로 뒤꿈치가 아픈 게 족저근막염이고 아킬레스건염이다.
스트레칭은 근육과 근막, 그리고 인대와 힘줄 같은 조직을 좀 느슨하고 부드럽게 이완시켜서 손상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뻣뻣하면 잘 찢어지지만 부드럽고 유연해진 조직은 그만큼 손상에 잘 견딘다.
*그림출처: 100세 시대 두 발 혁명, 비타북스
1) 발바닥 스트레칭
- 의자에 앉아 한쪽 발을 반대쪽 무릎 위에 올린다.
- 같은 쪽 손으로 발가락을 말아 쥐고, 발가락 관절이 위로 꺾이도록 발가락을 몸 쪽으로 당긴다.
- 반대쪽 손으로는 발뒤꿈치를 잡고 밀어낸다.
- 종아리 아랫부분과 발바닥이 시원하게 늘어나는 것을 느끼면서, 약 20~30초간 자세를 유지한다.
- 발가락이 꺾인 상태에서 발바닥에 팽팽하게 느껴지는 굵은 힘줄 같은 조직을 만져본다. 그게 바로 족저근막이다. 족저근막이 팽팽해진 상태에서 뒤꿈치에서 앞꿈치 방향으로 압력을 가하며 문지르듯이 족저근막을 늘려 준다. 10~15회 정도 쭉쭉 밀어준다.
*그림출처: 100세 시대 두 발 혁명, 비타북스
2) 종아리 스트레칭
- 양손으로 벽이나 의자를 잡고, 한 발은 앞으로 다른 한 발은 뒤로 뻗는다.
- 두 발은 11자로 반듯하게 하고, 바깥으로 벌어지지 않도록 주의한다.
- 상체를 세우고 앞쪽 무릎은 구부리고 뒤쪽 무릎은 편 상태로 엉덩이를 앞으로 민다. 이때 뒤꿈치가 바닥에서 떨어지면 안 된다.
- 뒤쪽 다리의 종아리와 아킬레스건이 늘어나는 것을 느끼면서 20~30초 간 유지한다.
- 이번에는 뒤쪽 다리의 무릎을 약간 구부리고 엉덩이를 약간 뒤로 빼면서 눌러주는 느낌으로 수행한다. 종아리 아래쪽 깊숙이 위치한 근육이 늘어나는 것을 느끼면서 20~30초 간 유지한다.
3. 다리 부기 빼기
하루 종일 많이 걷고 나면 다리가 붓기 마련이다. 발쪽으로 내려갔던 혈액과 체액이 충분히 위로 올라오지 못해서 생기는 게 부종이다. 부종은 그냥 두면 점점 악화되기도 하고 염증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빼줘야 한다. 제일 좋은 방법은 바닥에 누워 벽에 대고 두 다리를 높이 올려놓는 것이다. 10분 정도 그렇게 하면 다리 부기가 빠지면서 시원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모처럼의 여행에서 발 통증으로 인해 즐거움이 반감되지 않길 바란다. 사실 발 건강은 여행뿐만 아니라 건강한 삶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노화된 발을 가지고 살아가야할 기간이 길어졌다. 요즘 발의 노화현상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데, 자세히 들어보면 걷는 걸 좋아해 많이 걸었다는 분들이 많다. 건강을 위해 만보 걷기를 하는 분들도 많은데,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많이 걷는 건 발에 무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발을 혹사시킨 결과는 혹독하게 다가온다. 발바닥이 얇아 충격흡수가 안되어 걸을 때마다 아프고, 아치가 무너지고 무지외반증 같은 변형이 온다. 발바닥 신경이 닳고 닳아 손상되면 시리고 저리고 화끈거리거나 발바닥 감각이 무뎌진다.
발의 노화현상은 치료 방법이 없기 때문에 예방이 최선이다. 평소 꾸준한 스트레칭으로 발을 부드럽고 유연하게 하자. 또 발가락을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풋코어 운동으로 잠자고 있는 발의 근육들을 깨워보자. 오늘부터 발을 위한 안티에이징 1일 시작이다.
Columnist
김범수
인하대병원 정형외과 교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세브란스병원에서 수련의, 정형외과 전공의, 족부 전임의를 수료했다. 스위스 리스탈병원 족부파트 전임 펠로우, 미국족부족관절학회 트라벨링 펠로우쉽을 거쳐, 미국 펜실베니아대학에서 연수했다. 2021년 유튜브 〈김범수 교수의 발편한 세상〉을 오픈했다. 50여 개의 동영상으로 12만 명의 사람들이 구독하는 실버버튼 채널이 되었고, 누적 조회수는 1,000만 뷰를 돌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