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트럼프노믹스’ 강달러/고환율의 시대, 그리고 우리의 대응

한진수 경인교육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경제
도널드 트럼프가 4년 만에 미국 대통령으로 복귀했다.
공화당이 백악관뿐 아니라 상·하원까지 장악하면서 트럼프는 공약을 이행할 수 있는 든든한 지원군까지 얻었다.
영국 연구소 EIU는 ‘트럼프 리스크 지수’라는 것을 발표했다.트럼프 재집권으로 각국이 받을 위험성을 무역수지 등 6개 요인을 반영해 수치화한 것이다.우리나라는 10위에 올랐다.
왜 우리나라가 트럼프 재집권으로 세계에서 열 번째로 위험스러울까?
달러의 강세
트럼프가 당선되자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달러의 가치였다. 트럼프가 취임하면 미국 금리가 다시 오르거나, 적어도 내려가지 않으리라 예상되기 때문에 달러가 강세를 보였다. 왜 사람들은 미국 금리를 하방 경직적으로 예상할까? 그 답은트럼프가 내세운 대선 구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MAGA)를 실현하기 위한 양대 경제 정책인 ‘관세’와 ‘감세’에서 찾을 수 있다.한 마디로 말하면 미국을 위해 세금 정책을 무기로 적극 활용하겠다는 이야기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있지만...
첫 번째 무기는 관세 인상이다. 트럼프는 미국의 만성적인 대규모 무역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관세를 무차별적으로 부과하겠다고 공언해왔다.무역 적자 상대국 1위인 중국에 대해서는 현재보다 3배 수준의 관세 폭탄을 예고했다. 다른 국가에 대해서도 기존 관세율에 10~20%를 일괄적으로 추가 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보편 관세’(universal tariffs) 라고 부른다.미국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9위의 무역 적자국이다. 보편 관세 부과의 사정권에 안에 들어있다. 미국과 맺은 자유무역협정 (FTA)이 있는데, 설마 우리나라는 예외겠지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닌 것이다.
하지만 미국도 이러한 관세 인상으로 이득만 취하는 것이 아니고 대가를 치르게 된다.‘인플레이션’이 미국 경제가 부담해야 할 대표적인 대가이다. 관세만큼 수입 소비재 가격이 오르고,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미국에서 생산하는 각종 상품 가격이 연쇄적으로 오를 것이다.인플레이션은 건전한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이다. 인플레이션 조짐이 보이면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작금의 금리 인하 기조를 철회하거나, 심할 경우 금리 인상으로 선회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내세운 두 번째 정책,‘감세’도 미국 금리를 올리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감세와 재정 지출 확대로 미국의 재정 적자는 더 심해질 것이 확실하다.이미 재정 적자로 시름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재정 곳간을 메우고 경기 부양책을 지속 유지하려면 국채를 대규모로 발행해야 한다. 국채 발행량이 증가하면 가격이 하락하고 금리가 상승한다.
환율 1,450원 돌파, 고환율의 시대
2024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3.00%, 미국 기준금리는 4.25~4.50%이다. 미국 금리가 우리나라 금리보다 1.25~1.50%p 높다. 우리나라에 유입된 외국인의 투자 자금이 미국의 고금리를 노리고 빠져나갈 수 있다는 말이다. 국내에 달러 공급이 줄어들어 달러가 귀해지므로 환율은 오른다.
이게 다가 아니다.보편 관세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하고 교역 상대국의 보복이 되풀이되면서 세계 경제가 침체하고 불확실성이 커질 우려가 있다.이미 중국은 보유 자원을 무기화하며 희귀 자원의 수출을 통제하겠다고 트럼프 행정부와 미국에 경고했다.
투자 심리와 세계 교역이 위축되면 안전 자산인 달러를 선호하는 심리가 확산한다. 달러 가치가 상승한다는 뜻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고 정책 내용이 구체적으로 드러남으로써 일부 불확실성이 사라지면 강달러 현상이 다소 주춤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경제는 중국과의 무역 분쟁,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 등의 영향을 받아 ‘1달러 =1,400원대’ 선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고환율이 ‘뉴노멀’로 굳어질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과거에는 ‘환율 상승=수출 증가’ 공식이 들어맞아 환율 상승을 반기는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근래에는 이 공식이 어긋나고 있다. 저가로 수출에서 승부를 걸 수 있는 국산품이 줄어든 탓이다. 제조 과정에서 수입 원자재나 중간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기업들은 환율 상승으로 수익성이 나빠질 것이 뻔하다. 또한, 우리 기업이나 정부가 빌린 외화 부채를 상환해야 하는 부담도 환율 상승분만큼 가중된다.수입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는 고환율로 수입 물가가 상승하고, 이것이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는 문제가 있다.소비 심리가 좋지 않은 지금, 설상가상으로 구매력까지 떨어져 내수가 더 위축되고 경제 성장 동력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
우리는 왜 금리 인하를 망설일까?
코로나 이후 유발된 물가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강력한 통화 긴축 기조를 유지했던 세계 주요국은 물가가 안정세를 보이자 2024년 하반기부터 완화 기조로 선회했다. 한국은행도 2024년 말에 두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인하해 경기를 부양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그런데 트럼프 정책의 영향으로 유발되는 인플레이션 때문에 미국의 금리 인하 기조가 일찍 종료된다면,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기조 역시 발목이 잡힌다.미국이 금리를 인하하지 않는데 우리만 낮춘다면 양국 금리 격차가 더 확대돼 환율 상승 압박이 한층 심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정부는 환율의 변동성과 불확실성을 줄여 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최우선 노력을 하는 중이다.정부의 노력으로 시장 불확실성이 사라져야 기업이나 가계가 미래를 예측하고 의사결정하기 수월해진다. 선제 대비책으로 정부는 유사시에 달러를 공급받을 수 있는 ‘통화 스와프’를 체결하거나, 이미 체결된 통화 스와프는 규모를 확대하고 기간을 연장해 금융 시장에 강력한 안정화 신호를 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대기업은 환율 변동에 대응해 파생상품을 거래하는 등 헤지(hedge) 역량을 가지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대개 그렇지 못하다. 강달러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소기업을 위한 지원 대책을 마련하는 등 다가올 충격에 미리 대응하여,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 정책이 우리 경제에 미칠 부담과 부정적 효과를 최소화할 준비도 해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 다행인 점은 트럼프 행정부의 집권 1기를 통해 그의 전략과 습성이 이미 노출되었다는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고 했다.트럼프 행정부를 경험한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통상팀을 꾸려 대응 전략을 시나리오별로 만들어 놓아야 한다.트럼프 대통령은 속전속결을 좋아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미국의 요구가 온 다음 그제서야 대책을 마련하면 늦는다. 미리 준비해두고 요구가 있으면 즉시 대응하는 전략이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트럼프 2기 정부는 우리나라에 보편 관세를 부과하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재협상 여지도 남길 것으로 보인다.정부는 무역 협상에서 내놓을 비장의 카드를 미리 손에 쥐고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트럼프 행정부가 납득할 만한 수준의 대미 투자를 추진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즉, 우리의 투자가 트럼프 대통령이 중시하는 자국 내 일자리 창출 및 미국 경제에 기여한다는 점을 적극 알리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를 형성함으로써 미국이 쌓아 올리는 무역 장벽을 최저 수준으로 만들어야 한다.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정책은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지속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동안 중국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서 누렸던 압도적 지위의 분야를 우리 기업들이 대신 차지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우리나라 기업의 미국 진출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일 또한 정부와 공공 부문이 힘을 합쳐 풀어 나가야 할 과제이다.
Columnist
한진수
한진수
인천경제교육센터장
금융감독원 민생금융자문위원장
경인교육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대우경제연구소에서 국내경제팀장으로 재직하며 한국 경제 분석 및 예측에 힘썼다. 현재 경인교육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며 미래의 교사들에게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경제교육학회 회장과 한국금융교육학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경제·금융 교육 활성화를 위해 앞장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