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sta la vista’(안녕, 잘가)를 접고 터미네이터가 “I'll be back”을 선언했다. <터미네이터 : 다크 페이트>는 28년 만에 이어지는 진짜 터미네이터 시리즈다. 터미네이터 1·2편을 제작한 제임스 카메론이 각본과 제작에 참여했고, 또 한 명의 주인공 린다 해밀턴도 돌아왔다. 아들 존 역을 맡았던 에드워드 펄롱과 T-800인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잠시나마 한 스크린에 담긴다는 것만으로도 올드팬들은 감격스럽다.

‘Hasta la vista’(안녕, 잘가)를 접고 터미네이터가 “I'll be back”을 선언했다. <터미네이터 : 다크 페이트>는 28년 만에 이어지는 진짜 터미네이터 시리즈다. 터미네이터 1·2편을 제작한 제임스 카메론이 각본과 제작에 참여했고, 또 한 명의 주인공 린다 해밀턴도 돌아왔다. 아들 존 역을 맡았던 에드워드 펄롱과 T-800인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잠시나마 한 스크린에 담긴다는 것만으로도 올드팬들은 감격스럽다.

살인기계 vs 인류

1984년 개봉한 <터미네이터>는 SF 역사에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9년 먼 미래로부터 살인기계인 T-800이 타임머신을 통해 현재로 온다. T-800의 목적은 새라 코너라는 여인을 제거하는 것! 가까운 미래 인공지능을 가진 전략방위 네트워크인 스카이넷은 핵전쟁을 일으키고, 인류를 전멸로 몰고 간다. 이때 인간저항군의 리더 존 코너는 기계에 반격을 가한다. 존 코너를 제거할 수 없었던 스카이넷은 45년 전 과거로 터미네이터를 보내 존 코너를 전사로 키웠던 그의 어머니 새라 코너를 제거하기로 한다. 이를 알아챈 존 코너는 자신의 부하 카일 리스를 1984년으로 보낸다.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서다.

<터미네이터>는 당초 저예산으로 찍은 영화다.
하지만 촘촘한 시나리오와 화려한 액션은 관객들을 사로잡았고 <터미네이터2>부터는 블록버스터로 격상됐다. <터미네이터>는 SF의 탈을 썼지만 피 튀기는 장면들이 많아 아이들은 볼 수 없는 ‘R’등급을 받았다. ‘사이버 느와르’ 혹은 ‘테크노 느와르’로 분류할 정도다.

여성,
전사로 거듭나다

<터미네이터>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 중 한명을 꼽으라면 새라 코너다. 겁 많고 평범한 여성이었던 그는 터미네이터에게 쫓기면서 점차 강인한 여성 전사로 바뀌어간다. T-800의 공격에 부상을 입고 쓰러진 카일 리스에게 “일어서. 명령이다. 전사”라고 외치는 장면은 운명을 받아들이고 정면대결을 선택한 그의 모습을 보여준다. 새라 코너는 카일 리스와의 관계에서 얻은 존 코너를 끝내 지켜내며 미래의 전사로 키운다.

<터미네이터2>에서 스카이넷은 어린 존 코너를 제거하기로 하고 T-1000을 보낸다. 액체금속으로 만들어져 자유자재로 변신이 가능한 살인기계다. 새라 코너는 T-1000에도 맞서는 강인한 전사가 되어있다. 근육질 몸매에 총기를 자유자제로 다루는 그녀에게서는 더 이상 평범한 여성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터미네이터 : 다크나이트>에서 그녀는 더 강인해졌다. 최신형 터미네이터 Rev-9에게 바주카포를 쏘는 방탄복 입은 새라 코너의 모습은 단순한 ‘걸크러쉬’를 넘어섰다.

아름다운 꽃은
고난 뒤 핀다




매달 가계부도 제대로 못쓴다던 새라 코너를 이같이 극적으로 변화시킨 동기는 무엇일까. 아무리 도망가 본 들 터미네이터의 추격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강해지는 쪽을 택했다. 이른바 ‘앙스트블뤼테’다.
앙스트블뤼테란 독일어로 불안을 뜻하는 ‘앙스트(Angst)’와 개화를 뜻하는 ‘블뤼테(Blute)’의 합성어로 ‘불안 속에 피는 꽃’이다. 생명체는 자신의 생존이 위태로워질 경우 사력을 다해 자신의 마지막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는다.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로 잇기 위해서다. 때문에 불안 속에 피는 꽃은 평소보다 더욱 화려하고 유혹적이다. 다시 말해 앙스트블뤼테는 고난을 이겨낸 아름다움을 말한다.
앙스트블뤼테의 사례로 자주 거론되는 것이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바이올린이다. 대당 100억 원이 넘어 최고의 명품으로 꼽히는 그의 바이올린은 제작방법이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1700년대 당시 유럽에 닥쳤던 소빙하기에 비밀이 있다는 ‘설’이 있다. 1645~1715년 70년간 유럽에 소빙하기가 닥쳤는데 극심한 추위가 이어지자 생존의 위협을 느낀 나무들은 성장을 극도로 늦췄다. 그 덕에 목재의 밀도가 매우 균일하고 촘촘해졌는데 이 나무로 악기를 만드니 최고의 음질이 나오게 됐다는 것이다.

앙스트블뤼테,
생존을 위협하다

앙스트블뤼테는 생물학적 용어지만 요즘은 경제·경영에서도 많이 차용된다. 어려움에 빠진 기업이나 국가가 뛰어난 생존력을 보이며 극적으로 위기를 탈출하는 경우에 빗댄다. 정두희는 저서 <미장세>를 통해 중국의 최대 농업기업으로 발돋움한 신시왕그룹을 앙스트블뤼테의 사례로 꼽았다. 신시왕그룹은 사업 초기 병아리 10만 마리를 주문한 유통상이 부도가 나 판로가 막히면서 파산위기에 몰렸다. 직원들은 무작정 시장에 나가 발이 부르트도록 돌면서 병아리를 팔았고 이때 만들어진 네트워크와 노하우는 그룹을 중국 최고의 농장으로 발돋움하게 했다.

1997년 외환위기는 우리에게 앙스트블뤼테였다. 생존을 위해 시민들은 장롱 속 금을 팔아가며 힘을 모았고, 정부와 기업은 구조조정을 통해 빠르게 대외경쟁력을 확보했다. 거시경제로 보면 외환위기라는 엄청난 고통은 한국경제를 재정비하는 계기가 됐다.
일본이 첨단소재의 한국수출 규제도 ‘앙스트블뤼테’가 적용되고 있다. 생존에 위협을 느낀 한국경제가 소재산업 투자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반도체 핵심기술 수출규제로 한국 반도체 산업을 고사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몇 년 뒤 한국 소재산업이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한다면 ‘앙스트블뤼테’가 될 수 있다.

견뎌내면 비로소
거대한 산이 되리니

외부자극에 대응해 더 강해진다는 측면에서 앙스트블뤼테는 ‘메기효과’와도 맥이 통한다. 메기효과란 적절한 자극과 위협이 경쟁력을 더 높이는 것을 말한다.
과거 영국의 어부들은 북해나 베링해 연안에서 잡은 청어를 런던까지 운반할 때 수조에 천적인 물메기를 넣었다. 보통 장거리 운반 때는 청어가 잘 죽는데, 물메기를 넣으면 이를 피해 다니느라 런던까지 청어가 싱싱하게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미꾸라지를 운반할 때 메기를 이용한다. 혹은 오징어 양식장에 천적인 꽃게 몇 마리를 넣어놓기도 한다.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역사학자이던 아놀드 토인비는 “좋은 환경과 뛰어난 민족이 위대한 문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혹한 환경이 문명을 낳고 발전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고 밝혔다. 그는 모든 문명은 도전과 응전의 결과로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잉카 문명, 마야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등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 것도 도전이 없었기 때문으로 봤다.

앙스트블뤼테 속
시그널을 찾을 것

1993년 이건희 삼성 회장이 경영혁신을 내세우면서 강조한 것도 ‘메기론’이었다. 이 회장은 “이러다 삼성이 사라질 수 있다”며 그룹의 혁신을 요구했다. 가구업계의 공룡 이케아(메기)가 국내에 진출할 당시 국내 가구기업(미꾸라지)의 주가가 약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오르는 현상이 발견됐다.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하면서 동종업종이 긴장감을 가져 경쟁력이 되레 높아질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제기됐다.

IMF 외환위기 직후 국내 은행(미꾸라지)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선진금융기법을 갖고 있는 외국계 은행(메기)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판 것도 같은 이유였다.
앙스트블뤼테는 결과적으로 경제주체가 혁신을 하게 하는 동력이 될 수 있지만 장려하기는 힘들다. 위기를 견뎌야 하는 경제주체로서는 상당한 고통을 감내해야하기 때문이다. 전사가 된 삶이 행복했느냐고 새라 코너에게 묻는다면 그녀는 무어라 답할까. 전사는 결코 그녀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그러기에 심각한 위기가 오기 전에 적절한 대응을 하는 것이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앙스트블뤼테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희망을 준다는 점에서 경제주체들에게 주는 시그널은 분명히 있다.

글.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차장으로 경제에 대한 눈높이를 낮추기 위해 영화, 문학, 대중문화와 경제학을 접목하는 다양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저서로 『경제학자의 문학살롱』, 『영화 속 경제학』, 『아이언맨 수트는 얼마에 살 수 있을까?』, 『경제를 모르는 그대에게』 등이 있다.

글.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차장으로 경제에 대한 눈높이를 낮추기 위해 영화, 문학, 대중문화와 경제학을 접목하는 다양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저서로 『경제학자의 문학살롱』, 『영화 속 경제학』, 『아이언맨 수트는 얼마에 살 수 있을까?』, 『경제를 모르는 그대에게』 등이 있다.

장르 액션, SF
개봉 2019년 10월 30일
감독팀 밀러
출연맥켄지 데이비스, 아놀드 슈왈제네거, 린다 해밀턴, 나탈리아 레예스, 가브리엘 루나

장르 액션, SF
개봉 2019년 10월 30일
감독팀 밀러
출연맥켄지 데이비스, 아놀드 슈왈제네거, 린다 해밀턴, 나탈리아 레예스, 가브리엘 루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