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어른이 된 아들 심바가 물속을 들여다본다. 물에 비친 모습은 자신이 아닌 아버지 무파사다. 흠칫 놀란 심바 머리 위로 아버지의 환영이 꾸짖는다.
“기억하라. 네가 누구인지를. 너는 유일한 진짜 왕이자 나의 아들이다.”
<라이온킹>이 라이브액션(실사)판으로 돌아왔다. 라이브액션이란 만화나 애니메이션, 비디오 게임 원작을 바탕으로 실제 촬영한 영화를 말한다. 애니메이션을 실감나게 재현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으나 표현이나 상상력을 표현하는 데는 상대적으로 한계가 있다. 이런 점에서 영화 <라이온킹>은 디즈니가 그 한계에 도전장을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이제는 어른이 된 아들 심바가 물속을 들여다본다. 물에 비친 모습은 자신이 아닌 아버지 무파사다. 흠칫 놀란 심바 머리 위로 아버지의 환영이 꾸짖는다.
“기억하라. 네가 누구인지를. 너는 유일한 진짜 왕이자 나의 아들이다.”
<라이온킹>이 라이브액션(실사)판으로 돌아왔다. 라이브액션이란 만화나 애니메이션, 비디오 게임 원작을 바탕으로 실제 촬영한 영화를 말한다. 애니메이션을 실감나게 재현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으나 표현이나 상상력을 표현하는 데는 상대적으로 한계가 있다. 이런 점에서 영화 <라이온킹>은 디즈니가 그 한계에 도전장을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Ready Action?
Live Action!

Ready Action?
Live Action!

라이브액션을 애니메이션에 처음으로 효과적으로 사용한 사람은 ‘월트 디즈니’이다.
백설 공주(1937)에서는 라이브액션을 부분적으로 사용했고, 신데렐라(1950)에서는 전편에 걸쳐 활용했다. 그런 그가 <정글북>, <덤보>, <알라딘>에 이어 <라이온킹>을 통해 노하우 보따리를 세상에 풀어놨다. 메가폰은 <아이언맨>, <아이언맨2>, <스파이더맨 : 파 프럼 홈>을 만든 존 파브로 감독이 잡았다. 디즈니의 라이브액션 영화 <정글북>을 연출했으니까 <라이온킹>은 정확히 그의 두 번째 라이브액션 영화다.

쫓겨난 사자,
과거를 잊기로 하다

쫓겨난 사자,
과거를 잊기로 하다

널리 알려진 작품인 만큼 줄거리는 친숙하다. 심바는 호기심이 충만한 아기사자다. 아버지 무파사를 이어 ‘프라이드랜드’를 통치할 후계자로 태어났다. 하지만 호시탐탐 왕좌를 노리던 삼촌 스카는 하이에나와 계략을 꾸미고 형 무파사를 죽인 후, 조카 심바를 내쫓는다.
사막 한가운데서 길을 잃고 탈진한 가엾은 심바가 독수리밥이 되려던 찰나! 혹멧돼지 품바와 미어켓 티몬이 심바를 구한다. 이제부터는 ‘하쿠나 마타타(Hakuna Matata : 스와힐리어로 ‘모두 다 잘될 것’이라는 뜻)’가 시작된다. 심바는 괴로웠던 과거와 근심, 걱정을 모두 떨쳐버린 채 새 삶을 살기로 한다.

심바!
이제 그만
현실을 직시해!

심바!
이제 그만
현실을 직시해!

그 시각, 프라이드랜드의 상황은 악화되고 있었다. 보다 못한 암사자 날라는 프라이드랜드를 탈출하고, 정글에서 우연히 만난 심바와 사랑에 빠진다. 날라의 눈에 비친 심바는 이미 훌륭한 숫사자이다. 당장 스카와 싸워도 밀리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요구한다. 프라이드랜드로 돌아가 다시 왕이 되어달라고. 하지만 심바는 망설인다. “No, I can’t.”

심바는 왜 프라이드랜드로 돌아가는 것을 꺼리는 것일까. 심바는 자신의 정체성을 잊어버렸다. 자신의 잘못으로 아버지가 죽었다는 죄의식, 그리고 자신은 용맹한 사자가 아니라는 피해의식. 이 두 가지가 ‘프라이드랜드의 후계자’라는 정체성을 잃게 했다. 동물을 잡아먹기보다는 곤충과 풀을 먹고 살게 됐을 정도로 육식동물로서의 정체성도 사라졌다.

우리 모두는 ‘정체성’에
의해 움직인다



우리 모두는 ‘정체성’에
의해 움직인다

경제학은 선택의 학문이다. 한정된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분배하도록 돕는다.
이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경제적 가치’다. 돈이 된다고 생각하면 선택을 한다. 적어도 전통 경제학에서는 그렇다. 그런데 일상에서 우리는 단순히 경제적 가치만을 보고 선택할까. 아니다. 실제로는 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인종, 직업, 성별, 가치관, 규범까지 고려한다.
노벨경제학 수상자인 ‘조지 애커로프’는 이를 아이덴티티 경제학(정체성 경제학)이라고 명명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에 대해 ‘어떤 종류의 사람’이라는 특정한 상(象), 즉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이 상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할 경우는 자기도 모르게 불쾌감과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데, 유아 때에는 엄마 아빠에게 뽀뽀를 잘 하던 아이가 고학년이 될수록 뽀뽀를 하지 않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속한다. 고학년이 되어서도 부모에게 뽀뽀를 한다는 것은 ‘사회통념상’ 부끄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행여 누군가에게 “아직도 엄마 아빠에게 뽀뽀를 하느냐”고 놀림까지 받게 됐다고 가정해보자. 뽀뽀를 통해 자신이 얻는 효용은 더욱 낮아진다.

정체성에 상처 받은 한국
Boycott Japan

정체성에 상처
받은 한국
Boycott Japan

일본 상품 불매운동은 아이덴티티 경제학이 적용된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 상품과 여행은 가격대비 품질, 즉 가성비가 높은 것이 많다. 합리적(?)인 소비자라면 당연히 일본 상품을 마다할 이유가 없겠지만 위안부와 징용배상 거부 등의 과거사, 여기에 더해진 일본의 수출 규제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건드렸다. 약간의 경제적 손해를 보더라도 아이덴티티를 지키는 쪽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직장을 구할 때도 아이덴티티 경제학은 작동한다. 인간이 경제적 인센티브에만 반응한다면 무조건 임금을 많이 주는 직장을 구해야 한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축구스타 호날두는 중국의 슈퍼리그로부터 2년간 2억 유로(2623억 원)를 제의받았지만 거부하고 유벤투스로 갔다. 호날두가 유벤투스에서 받는 연봉은 3000만 유로(392억 원)로 중국이 제시한 금액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호날두가 중국보다 연봉이 적은 이탈리아를 택한 것은 클럽대항전 우승에 대한 욕심, 아시아라는 낯선 삶의 터전, 수준 낮은 리그에서 뛸 수 없다는 자존심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정체성을 활용하면
효율적 조직 운영이
가능해진다

정체성을 활용하면
효율적 조직 운영이
가능해진다

정체성은 인센티브 자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돈을 벌기 위해서 회사를 다닌다는 사람들(아웃사이더)은 급여에 매우 민감하다. 반면 회사를 자신과 동일시하며 적극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인사이더)은 상대적으로 급여에 둔감한 경우가 많다. 아웃사이더는 출퇴근을 할 수 있는 효용을 주는 유일한 보상이 돈이지만, 인사이더는 돈 이외에도 일에 대한 만족감, 회사에 대한 자부심, 동료애 등에서도 보상을 받는다.
경영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아웃사이더가 많은 회사는 그만큼 비용을 더 치러야 한다. 단지 돈만이 사원들을 회사에 붙잡아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인사이더가 많다면 적은 비용으로도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애사심을 키우는 것은 경영전략으로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다.
사원들의 행동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기업이 ‘어떤 아이덴티티를 세우고 내부와 공유하느냐’도 중요하다. 기업이 추구하는 아이덴티티와 직원의 아이덴티티가 충돌한다면 조직은 제대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이들 건강에 나쁜 과자를 만들어 수익을 남기는 제과회사에서 아이를 둔 부모들은 성심성의껏 일하기 힘들다.
철강제품을 만들던 회사가 어느 날 반도체를 생산한다고 할 때, 충분한 아이덴티티 공유 없이는 혼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조직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 구성원들과 아이덴티티를 점검해 보는 것은 그래서 필요하다.
완구산업 제품의 생명주기가 짧아지고 중국산 저가제품에 밀려 위기에 빠졌던 레고는 ‘놀이(Play)’라는 회사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정립하면서 리바운딩했다. 레고는 전략적 비전으로 ‘미래 놀이 창조’(Inventing the future of play)를 내세우고 로봇조립과 같은 어른들을 위한 장난감 브랜드를 개발했다. 또 ‘레고 브랜드 스쿨’에서 업무를 놀이로 재현했다. 고객들이 요청한 작품을 제작하고 고객들이 창조한 작품을 판매하는 ‘레고 팩토리’를 운영해 외부가 기대하는 이미지에 부합시켰다. 포스코경영연구원의 보고서 <기업의 비전과 아이덴티티,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에 나오는 얘기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보자. 아버지의 환영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심바는 마침내 정체성을 찾는다. 자신은 생명의 순환(Circle of life)의 맨 꼭대기에 있는 정글의 왕이자, 아버지 무파사를 이을 후계자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정체성을 되찾은 심바는 날라와 함께 프라이드랜드로 떠난다. 삼촌 스카의 저항이 거세지만 심바를 막아낼 수는 없다.
‘프라이드랜드를 계승할 유일한 후계자’라는 정체성은 심바에게 힘을 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호모이코노미쿠스는 경제적 인센티브를 중요시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인간은 그래서 생각보다 복잡한 존재다.

글. 박병률
『경향신문』경제부 차장으로 경제에 대한 눈높이를 낮추기 위해 영화, 문학, 대중문화와 경제학을 접목하는 다양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저서로 『경제학자의 문학살롱』『영화 속 경제학』『아이언맨 수트는 얼마에 살 수 있을까?』『경제를 모르는 그대에게』 등이 있다.

글. 박병률
『경향신문』경제부 차장으로 경제에 대한 눈높이를 낮추기 위해 영화, 문학, 대중문화와 경제학을 접목하는 다양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저서로 『경제학자의 문학살롱』『영화 속 경제학』『아이언맨 수트는 얼마에 살 수 있을까?』『경제를 모르는 그대에게』등이 있다.

장르 액션, 모험, 드라마, 가족
개봉2019년 7월 17일
감독존 파브로
출연도날드 글로버(심바 목소리), 비욘세(날라 목소리),
제임스 얼 존스(무파사 목소리) 전체 관람가